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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휴가의 클라이막스? 에서 방문한 구룡포 해수욕장이다.
밤에 찾아가서인지 인적은 별로 보이지 않고
몇몇 횟집과 술집간판의 불만 보인다.

구룡포에서 부산방향으로 차를 돌려 나오던 그 꼬불꼬불한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법한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헤치고 긴장하며
운전하던걸 생각하면....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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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찾은 대부도 바다를 보며 조개구이와 회를 먹고 카페에서 헤이즐럿 한잔...

위의 사진은 시화방조제에서 낚시하던 연인

아래 사진은 허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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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당일치기 여행코스!~

강화대교-(용흥궁과 성공회성당)-고려궁터-(강화산성 서문, 연무당 옛터, 곤충농원)-고인돌- 역사관-광성보-덕진진-초지진-전등사-초지대교.

그리고... 강화도에 역사적 유물과 유적지가 많은 이유~~~~

인터넷에서 본것에 의하면... 하하...

강화도는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곳입니다.
조선 후기에만 해도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 체결 등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답은 강화도의 위치가 갖는 중요성 때문입니다.

침략 세력은 당연히 조선의 수도인 서울을 노립니다.

육로보다는 수로를 통한 침략이 수월합니다. 그러려면 한강을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강화도는 한강 입구에 위치합니다.

강화를 차지하지 않고는 서울로의 진격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프랑스군이나 미군이 강화를 침공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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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박물관... 그리고 탱자나무

역사박물관에는 강화도의 선사시대부터의 유물과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았던 만큼 전쟁사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탱자나무

사기리 탱자나무는 적병이 성벽 밑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로 높이 4m,
밑둘레 1m, 수령은 약 400년이다. 땅 위 2.8m 높이에서 세갈래로 갈라져 용트림 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79호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4월이면 잎보다 지름 3~5cm의 흰꽃이 먼저 피고 열매를 맺는 가을이면 노랗게 탱자열매가 익는다.
이 탱자나무는 갑곳리의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와 함께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여기서 잠깐... - 인터넷에서 퍼온 소개글..

* 강화역사관
꼭 들러보아야 할 곳입니다. 역사관 안에는 강화와 관련된 역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단시간에 강화도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기 좋습니다. 따라서 아이들 숙제 해결이나  강화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가보아야 할 곳입니다.

* 초지진의 대포
조선시대 후기 조선의 대표적인 대포입니다. 흔히 '붉을 홍'에 '오랑캐 이'자를 써서 "홍이포"라고 부릅니다.
* 광성보의 성문 안해루 : 광성보에 가면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이를테면 정문같은 성격의 문입니다.
* 덕진진 : 덕진진 안에 있는 덕진돈대 출입문입니다. 덕진진에 가시면 남장포대-덕진돈대-경고비(대원군이 세운, 외국 선박 출입 금지를 알리는 비)를 보시게 됩니다.

* 용두돈대 : 광성보의 마지막 관람 코스입니다. 용의 머리처럼 생긴 돈대라고 해서 용두돈대로 불립니다.
* 삼랑성 동문과 남문 :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입니다. 정족산성으로도 불립니다. 프랑스의 침략인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격퇴한 곳입니다. 어디에 있을까요? 전등사입니다. 전등사 들어가는 문이 삼랑성 동문이고 남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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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발상중흥 기념비 , 박물관에서본 목판

금속활자에 대해 잠깐...


고종 19(1232)년 이전 기원설

고종 19(1232)년 이전 기원설은 주자본(금속활자본)을 중조(번각)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책끝에 나타나는 "이에 공장들을 모집하고 주자본을 중조하여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고자 하는 바이다. 기해(1239)년 9월 상순 중서령 진양공 최이는 삼가 기록하는 바이다"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중조본의 경우 몽고군이 침략해와 강화도로 천도한 기해(1239)년 9월에 중조한 것이므로, 중조의 원본이었던 금속활자본은 강화도로 천도하기 전에 이미 개경에서 간행되었던 것임을 시사하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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